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기념해야 한다


1. 1948년 온전한 독립이 이루어진 사실을 기념하지 않을 것인가


국가의 3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이다. 이 3요소를 모두 되찾은게 1948년이다. 1948년 9월 13일 미 군정으로부터 사법권을 이양받음으로서 독립이 마무리된 것이다. 이것을 기념하지 않을 것인가?

1919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져 대한민국 독립을 선포한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누가 이걸 부정하겠는가? 그러나 모두 아시다시피 1945년 우리는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바로 주권을 되찾지 못했다. 3년 간 미국과 소련의 군정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1948년에 미 군정으로부터 주권을 되찾아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세웠다. 1905년에 상실한 주권을 43년만에 되찾은 사실은 기념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정확히 말하면 1919년 시작된 민주공화국 수립 작업이 1948년에 주권을 되찾아 마무리된 것이다.



2. '법통을 계승한다'는 말은 현재의 대한민국과 과거의 임시정부가 다르다는 것이 전제에 깔려있다. 

현행 제6공화국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구절이 있다. 1919년 임정건국설의 가장 주된 근거다. 그러나 계승한다는 것은 A가 B의 무언가를 이어받는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고,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이면 뭔가를 이어받을 필요도, 계승할 필요도 없다. 그 자체인데, 뭘 계승하는가?

그 구절은 임시정부의 법적 정통성을 우리 대한민국이 물려 받았다는 뜻이지, 우리 대한민국이 임시정부 대한민국과 동일한 존재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계승이라는 것은 A와 B가 다르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하기 위해 고려라는 국명을 택하고, 조선은 단군조선을 계승하는 의미에서 조선이라는 국명을 택했지만, 고려=고구려가 아니며 조선=고조선이 아니다.



3. 우리의 건국시점은 1987년에 결정되었다는 말인가

임시정부가 헌법 전문에 들어간 것은 1987년 제6공화국 헌법 개정 때였다. 그 전에는 3.1운동이 들어갈 때도 있었고, 빠진 때도 있었다. 어쨌든 임시정부가 헌법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87년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건국시점이 1987년에 결정되었다는 것인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러면 우리가 또 헌법 전문을 바꾸면 건국시점이 또 바뀔 수 있는건가?



4. 제헌헌법은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

6공 헌법과 달리 제헌헌법 전문은 1919년 건국설과 1948년 건국설을 모두 뒷받침할 수 있다. 제헌헌법에는 '기미독립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을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는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는 말과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말이 모두 들어있다. 1919년에는 '국가를 건립'했고 1948년에는 '국가를 다시 건립'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1919년에도 나라를 세운 것이고, 1948년에도 나라를 세웠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적어도 임정건국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1919년에 국가를 건립하고 1948년에는 국가의 정부만 수립한 것'은 아니란 뜻이다.

그리고 이 문장을 잘 살펴보라. 제헌헌법은 기미삼일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건립, 선포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제헌헌법은 이제 독립정신을 계승해서 민주독립국가를 다시 세운다고 선포한 것이다. '정신'을 계승한다는 말은 6공헌법에 쓰여 있는 '법통'보다 더 협소한 의미라고 봐야 한다.



5. 1941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1941년 충칭 임시정부는 김구 주석의 주도로 '건국강령'을 발표했다.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해방 후 건국에 관한 대원칙과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당시 임시정부에 해방 후에 건국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마인드가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건국강령은 제1장 '총강', 제2장 '복국(復國)', 제3장 '건국(建國)', 한국광복군 공약, 한국광복군 서약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2장 복국은 일제로부터 광복을 쟁취하기 위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고, 제3장 건국은 광복 이후에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령은 복국과 건국을 각각 1기, 2기, 3기 등 단계별로 진행할 것을 다짐했다. 요컨대, 복국 뒤에 건국의 과정이 있게 될 것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6. 임정과 대한민국 사이에는 연속성이 약하다.

단언컨대, 백범 김구가 임정건국설을 들었다면 무덤에서 곡했을 것이다.

임정건국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져오는 근거를 보면 이승만 대통령의 발언, 이 대통령의 연호사용 등 이승만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당연하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고,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임정 초대 대통령에서 가져오려 했다. 이승만이 큰 어려움 없이 초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임정 초대 대통령이라는 상징성에서 오는 대중성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임정에서 쫓겨났고 임정의 대부분을 이끈 인물은 백범 김구였다.

8.15 해방 당시 임시정부의 리더 역시 김구 주석이었다. 그런데 김구와 김규식 등 임정인사들이 임정 자격으로 환국을 추진했지만 미군정의 반대로 인해 개인자격으로 귀국했다는 사실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해방정국에서 김구는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전개하면서 몇차례 임시정부가 주권을 갖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물론, 미군정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김구, 신익희 등 임정인사들은 한국독립당을 창립했다. 한독당은 단정수립에 반대하여 제1대 총선에 불참했다. 이것만으로도 1948년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보기에는 불연속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구는 제1대 국회 개원 뒤에 "현재 국회의 형태로서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아무 조건도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물론 김구의 해방정국 활동에 대해 여러가지 평가가 존재한다. 이승만을 좋아할 수도 있고 김구를 좋아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최소한 임정의 대표성이 이승만과 김구, 둘 중 누구에게 더 있겠냐는 것이다. 임정의 역사성에 대한 이승만의 주장과 김구의 주장이 서로 엇갈린다면 당연히 김구의 손을 들어주는게 맞지 않은가. 최근 한겨레가 이승만의 외교문서를 공개하여 임정건국설이 재확인됐다는 요지의 기사를 썼다. 내용이 어쨌든 간에, 이승만은 임정을 온전히 대표하기가 어렵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는데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단재 신채호)'는 욕을 먹어가며 임정에서 쫓겨났는데, 어떻게 그의 외교독립 활동을 근거로 임정건국설을 주장할 수 있는가.


7. 몽양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건준. 근현대사를 아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알만한 조직이다. 일제가 8.15 항복 직전에 몽양과 권력이양 작업을 논의하고, 몽양은 그에 따라 건준을 세워 건국을 준비했다. 물론 모두 알다시피 미군정은 건준을 인정하지 않았다. 해방 뒤에 건국을 준비한 조직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래도 해방 뒤에 건국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모두 친일파라고 할 수 있는가? 몽양 역시 상해 임시정부 초창기 멤버 중 한 명이었다.


8. 이승만도 머릿속에 1948년 건국에 대한 개념이 있었다. 

야권과 진보진영은 "보수가 좋아하는 이승만도 임정건국설을 주장했다"고 말한다. 이건 틀린 해석이다. 이승만의 초대 대통령 취임사에 '민국 30년'이라는 연호가 사용된 것은 팩트다. 그러나 그의 여러 연설문을 읽어보면 1948년 대한민국이 건립되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 1948년 7월 24일, 초대 대통령 취임사

"(상략) 건설하는 데는 새로운 헌법과 새로운 정부가 다 필요하지마는 새 백성이 아니고는 결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부패한 백성으로 신성한 국가를 이루지 못하나니 이런 민족이 날로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행동으로 구습을 버리고 샛길을 찾아서 날로 분발 전진하여야 지난 40년 동안 잊어버린 세월을 다시 회복해서 세계문명국에 경쟁할 것이니 나의 사랑하는 3천만 남녀는 이날부터 더욱 분투 용진해서 날로 새로운 백성을 이룸으로서 새로운 국가를 만년반석 위에 세우기로 결심합시다.
대한민국 30년 7월 24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물론 민국 30년 연호를 사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취임사 내용에는 국가를 세운다, 건설한다는 개념이 모두 포함돼있다.

2)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기념사

"외빈귀빈제씨와 나의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8월 15일 오늘에 거행하는 식은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이 새로 탄생하는 것을 겸하여 경축하는 것입니다. (하략)"

3) 1949년 8월 15일, 8.15 기념사

"민국건설 제1회 기념일인 오늘을 우리는 제4회 해방일과 같이 경축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민국건설 첫돐되는 날에 내가 기왕에도 여러번 선언한 바를 다시 선언하고저 하는 것은 우리가 건설하는 이 사회 안에서도 자유요, 밖으로도 자유로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독립의 첫 기념임을 또다시 외치나니 이것은 우리의 오랜 역사에 우리가 자유민임을 다시 기록하는 것입니다."

4) 1958년 8월 15일, 8.15 기념사
"오늘은 우리가 뒤에 성취한 일을 기념하며 앞에 성취할 일을 위하여 공헌할 것을 작정하는 날입니다. 우리 민국이 10년 전 이날에 성립되었는데 우리나라의 장구한 역사에 비교하면 이것은 심히 단축한 시일인 것입니다."



9. 이승만 대통령의 민국 30년 연호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한 민국 30년 연호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생각은 1949년 3.1절 경축사를 보면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삼십년전 오늘에 13도 대표인 33인이 비밀히 모여서 독립을 선언하고 대한민주국의 탄생을 세계에 공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선열들이 용감스럽게 이 일을 행한 환경이 140여년 전에 미국독립선언을 서명하던 그때의 형편만 못지않게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와 독립을 사랑하는 정신은 어디서나 한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건설하는 민주국은 탄생한지 아직 1년이 못 되었으나 사실은 30세의 생일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민주국은 해방후 미군정의 힘으로 성립된 것은 아닙니다. ..."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을 부정한 것이 아니다. 1945년 외세에 의해 해방되어 48년 건국에 이르렀지만, 1919년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대외적으로 선포한 자주독립정신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민국 연호를 사용한 것이다. 역사적인 사실관계로서 1919년과 1948년 중에서 하나를 고른 것이 아니다. 

민국 30년 연호는 아직 연호가 통일되지 않았을 때 이승만이 자의적으로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948년 정부수립 당시 연호가 법적으로 통일되지 않아서, 행정부는 민국 연호를, 입법부는 단기 연호를, 사법부는 서기 연호를 사용했다. 연호 통일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국회가 1948년 10월 연호법을 통과시켜 단기연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민국 연호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10. 그 외의 근거들...


1958년 8월 15일 동아일보 기사다. 왼쪽 빨간 박스는 동아일보 사설인데, 제목에 "건국십주년기념일을 맞이하면서"라고 써있다. 오른쪽에는 민주당 출신 장면 부통령의 기념사를 담고 있다. "건국십주년을 맞이하는 금년의 팔일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건국 10주년 축하메시지를 보도한 기사다. 기사 소제목에 '아대통령, 건국 10주년 멧세지'라고 써 있다. 메시지 중에는 "대한민국수립 10주년을 맞이하여 본인은 대통령 각하와 한국민에게 미국의 따뜻하고 우호적인 축하를 전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1955년 8월 15일 해방 10주년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까?


이기붕 민의원의장은 "팔월십오일 오늘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사슬을 끊고 그 폭정에서 해방된지 십주년 되는 민족광복의 가절인 동시에 국권을 도로찾아 영광에 넘치는 우리의 대한민국을 수립한지 칠주년되는 조국광복의 가절입니다." 대한민국을 수립했다는 말을 분명히 하였으며, 1945년 8.15는 민족광복, 1948년 8.15는 조국광복이라고 정의내렸다.

김병로 대법원장의 기념사다.

"십년전 이날에는 민족해방을 맞이하였으며, 칠년전에는 국권을 회복하였지만..."

건국이나 수립 등의 말은 사용하지 않았으나, 국권을 회복한 의미를 부각시켰다.


11. 본래 1948년 8.15는 '독립'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적 용어로서 해방 - 광복 - 독립을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 셋 다 1945년 일제 통치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한다. 그러나 본래 1945년 8.15는 해방이었고, 1948년 8.15는 독립이었다. 광복은 그때그때마다 달랐다.



1948년 8월 16일 동아일보 1면 기사다.

"8월 15일 해방 세돌을 맞이하여 감개도 무량한 가운데 대한민국정부권립의 역사적인 대축전을 거행되여 사십년간의 외정을 물리치고 이나라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하였다."


1949년 8월 15일 동아일보 1면 기사다. "대한민국독립첫돌맞이"라고 딱 써있다.


이는 1949년 8월 16일 동아일보 1면에 실린 사진이다. 가운데 태극기 아래에 '경축 대한민국독립1주년기념'이라고 써 있다. 1949년 8월 15일 정부수립을 '독립'으로 보았다는 명백한 증거다.



동아일보 1면 헤드라인 기사다. "오늘은 8월 15일! 대한민국건설 제1주년 기념일인 동시에 40년이라는 기나긴 왜제의 패반에서 해방된 후 네번째 맞이하는 역사적 경축일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1953년 8월 16일 경향신문 기사다. 이승만 대통령은 8.15 기념사를 "금년 독립경축기념일은 민국이 전쟁을 중지하며..."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1960년 8월 15일 윤보선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에서도 해방과 독립은 엄격히 구분되었다.

"열다섯돌을 맞이하는 8.15의 날 오늘 이자리에 내가 여러분 앞에 나선 것도 기쁜 일이요, 제2공화국에서 처음으로 8.15의 기념행사가 있게 된 것도 기쁜 일입니다. 돌이켜보건대 우리 역사상에 있었던 항일운동의 과업이 헛되지 않아서 세계제2차대전의 승리의 연합국들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약속하면서 8.15의 해방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15년전 8.15의 해방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었고, 수많은 애국동포와 참절한 선열들의 항쟁운동의 보답이었읍니다. 그 후 독립의 염원은 성취되어 남한만이라도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이승만박사 정부는 점점 애국적이고 양심적인 정치인들을 멀리하였고 아무런 대비없이 6.25사변을 겪게 되었던 것입니다."

언어에는 사회성이 있다. 단어의 뜻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막기 어려운 일이다. 굳이 지금 와서 45년 8.15는 해방, 48년 8.15는 독립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1948년 정부수립은 단순히 정부수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립과 건국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었다. 이미 나라는 1919년에 세워졌고, 48년에는 정부만 수립했다는 지금 야권의 주장은 당대 사람들의 인식과 거리가 멀다.


야권과 진보진영은 마치 1948년 건국을 주장하면 친일악마라도 되는마냥 정치적 공세를 가하고 있지만, 모든걸 고려해볼 때 1948년 건국이 옳다고 봐야 한다.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를 기념하자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처럼, 1948년 건국과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모두 기념하는게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둘 중 하나의 택일 문제처럼 몰고 가는데에는 실상 분단체제의 대한민국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보진영의 내밀한 욕망이 숨어 있는 것 아닌가.

덧글

  • 핵무장 미군철수 2016/10/04 21:17 # 답글

    매우 정리가 잘 되어 있군요.
    유사좌파가 친일파 타령에 몰두하는 것은 대중들이 미군철수 자주화에 눈뜨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죠.
    진보좌파라면 상해임정이 아니라 건준에서 나온 조선인민공화국에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지금 스스로 유사좌파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지요.
  • 귀여운 코알라대왕 2016/10/05 13:35 #

    10년 전만 해도 좌파 진영에서 임시정부를 너무 강조하면 좌파계열 독립운동이 배제되어 독립운동사가 쪼그라든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었죠.
  • 핵무장 미군철수 2016/10/12 18:12 # 답글

    여기에 많은 정보가...
    http://qindex.info/drctry.php?ctgry=717
  • 김씨네 2018/08/19 00:06 # 삭제 답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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